아파트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게 지겨워졌다. 뭘 해도 쉽게 심드렁해졌다. 일은 해도 성과가 나지 않고 돈은 벌리지 않았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미소는 모두 가식 같다. 지겹다. 지겨워. 많은 것들이 지겨워졌을 때 나는 이사를 갔다.
모두가 이사 가려는 나를 말렸다. 손해라고. 멀쩡한 고향을 왜 떠나냐고. 이사를 가면 생활비도 더 들 것이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도 못 받을 거라고.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급하게 구한 집은 전세라 부동산으로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었지만, 이곳을 굳이 택한 이유는 있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스타벅스가, 10분 거리에 바다가 있다. 이사를 했으니 매일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책이나 신문을 읽고 해변으로 가는 일상.
강의가 없는 날 아침이면 커피숍으로 가서 신문을 읽었다. 누가 읽지 않은 빳빳한 신문을 챙겨 들고 커피숍을 가는 일은 어떤 종류의 뿌듯함을 선사한다. 아무도 모르는 기쁨을 혼자 느끼며 신문을 자리에서 펼친다. 한 장 펼치면 글씨체가 눈에 들어온다. 정갈하다. 정성스러운 밥상을 받아서 밥을 먹듯이 기사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는다. 읽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칼럼을 발견했다.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가을에는 무기력을 디톡스하자라는 칼럼 내용에 따르면 무기력을 극복하는 데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메모리 체크’라고 한다. 하루를 마감할 때 어떤 감성으로 마무리를 짓는가가 무기력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무기력이었구나!’ 그때 그 칼럼을 읽고 나서야 나는 내 감정이 무기력임을 알아차렸다. 사람도, 감정도 모두 지겨운 게 무기력임을. 기사에서는 이때 크게 도움이 되는 게 미니 브레이크, 즉 작은 쉼이라고 한다. 신문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삶이 잠시 주춤거릴 때 다시 추동하는 힘의 원천을 지면에서 얻었다.
나는 곧장 걸어서 바다로 갔다. 바다에 도착해 신문을 반으로 접고 손에 끼고 계단에 서서 하늘색을 바라보았다. 그다음, 신발과 양말을 벗고 해변을 걸었다. 바닥에서 모래가 부드럽게 발바닥 전체를 감싸는 느낌. 햇빛이 머리카락을 덮고 귓가에 파도 소리까지. 걷다가 해변 중간쯤 자리를 잡고 모래 위에 툭 앉았다. 무기력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해 나만의 미니브레이크가 필요했는데 여기가 정말 딱이었다.
당신은 무기력해질 때 작은 쉼을 할 수 있는 공간, 혹은 루틴이 있는가? 있었음에도 나처럼 더 이상 그 장소가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하루 끝 엔딩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컴포트존에서 나와서 새로운 곳에서 생활해 보자. 분명히 당신도 나처럼 그것들이 주는 힘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하루가 지겹지 않게 될 것이다. 새롭고 또 새롭다. 사랑하는 신문과 바다가 함께하는 생활 말이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