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의 함께 신문 읽어요] 질문이 절로 솟아나는… 신문은 내게 ‘협업 도구’다

나는 전세 세입자다. 신축 아파트 하자 보수로 갑자기 바닥 공사가 시작됐다. 평범했던 집은 하루아침에 공사판이 되었다. 6개월간 고정되어 있던 짐을 꺼내고, 책장을 비우고, 아이들 손을 잡고 숙박 업체를 전전했다. 남들은 “아이들이 좋아했겠다”라고 했지만 글쎄. 집 5분 거리에서 집에 못 들어가는 불편함은 나만 안다.

낯선 방을 전전하던 3일째, 티브이 밑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신문을 펼쳤다. 반 정도 읽었을까. 문득 펼친 초록색 배경의 아파트 광고 지면. 아파트 이름보다 더 크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잠깐 멈췄다.

“아파트는 왜 맨날 저렇게 예쁜 여자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광고하는 거야….” 중얼거리면서도 그 광고 속 여자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미소는 마치 가족과 행복해지려면 이런 아파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은데도 고개를 일부러 크게 저으며 생각했다. 집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지. 등을 휙 돌려 책상 뒤를 보니 아이들이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신문을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온다. AI 교과서 도입 기사를 보며, “학습 도구도 중요하지만, 점점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아이들 마음 관리를 위한 대책은 있는 걸까?” 정치 토론회 기사를 보며, “상대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태도로 토론한다는 게 말이 되나? 토론 자격 자체를 박탈해야 하는 거 아닌가?” 출산율 기사를 보며, “저렇게 숫자로만 설명해선 뭐 하나, 정작 지원은 알아서 찾아내야 하고. 숨어 있는 혜택을 뒤적여서 찾아내야 하는 게 얼마나 불편한데” 하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신문을 읽으며 했던 그 혼잣말들은 때로는 엉뚱하고,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들이 내 생각의 길을 조금씩 넓혀주었다. 신문을 꾸준히 읽은 지 1년 반이 되자 나는 깨닫는다. 내 안의 비판자는 신문을 먹고 쑥쑥 자라나고 있다는 걸.

요즘은 누구나 AI와 협업하는 시대다. 원하는 답을 척척 내주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AI의 답을 잘 활용하려면 오히려 질문하는 힘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질문이 있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키우는 훈련, 비판자를 자라게 하는 연습은 신문 읽기를 통해 완성된다.

신문은 해답 대신 내게 물음표를 준다. 그 물음표 덕분에 나는 AI의 답도, 세상의 소리도, 내 삶의 방식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질문 속에서 나는 멈추고, 해석하고, 다시 생각한다. 신문은 그렇게, 나에게 능동적인 협업의 도구다. 내 질문, 내 해석, 내 혼잣말은 신문이라는 파트너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신문을 펼쳐 든다. 질문은 늘 새로운 길을 만드니까.

출처 : 조선일보